미역 채취 기술
울진의 미역 채취는 단순한 해조류 수확이 아닌, 계절과 물때, 바람과 햇살, 그리고 사람의 협업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전통 생업 기술로 음력 3월부터 5월 사이에만 가능한데, 이 시기에는 ‘바다 날씨’, ‘하늘 날씨’, ‘해녀 수급’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비로소 작업이 이뤄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조건을 ‘삼박자’라 부르며,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채취를 미루는 것이 오랜 관습이다.




채취 조건(삼박자)의 성립
삼박자는 미역 채취가 가능한 환경을 판단하는 지역 고유의 경험적 기준이다. 첫째, 바다 날씨는 파도가 잠잠하고 물살이 너무 세지 않아야 한다. 둘째, 하늘 날씨는 햇볕과 바람이 고루 좋아야 미역을 건조까지 계획할 수 있다. 셋째, 채취에 필요한 해녀나 작업자의 인력이 제때 확보되어야 한다. 이 조건이 모두 맞아야만 작업이 시작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며칠이고 바람의 흐름을 기다린다.
떼배 운행과 접근 방식
채취 당일 새벽, 마을 사람들은 전날 모래사장에 두었던 떼배를 다시 바닷가로 인양하여 짬으로 이동한다. 떼배는 오동나무를 엮어 만든 평평한 뗏목 형태로, 노나 삿대를 이용해 조용히 움직인다. 이 배는 일반 선박과 달리 파도에 덜 흔들리고, 수심이 얕거나 바위가 많은 곳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울진에서 오랜 세월 미역 채취에 사용되어 왔다.


해녀의 물질과 수면 위 채취의 병행
울진의 미역 채취는 수면 위 작업과 수중 작업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부 작업자는 떼배 위에서 수경을 통해 바닷속을 관찰하며 긴 장대 끝에 낫을 부착한 낫대로 미역을 베어낸다. 반면 해녀들은 잠수하여 바위 틈에 붙은 미역을 손에 든 낫으로 직접 자르고, 채취한 미역을 그물망에 담는다. 이러한 수중 작업은 수심이 깊거나 바위가 잠긴 지형에서 효과적이며, 두 방식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병행된다.
짬 추첨과 조별 관리
마을 어촌계에서는 매년 6월경, 미역이 자라는 수중 바위인 '짬'을 조 단위로 추첨하여 배정한다. 배정된 조는 해당 짬을 1년간 관리하며, 미역 채취가 가능한 시기에는 해당 구역에서만 작업을 진행한다. 짬은 마을의 공유 자산으로 간주되며, 이를 사적으로 점유하거나 양도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짬매기(바위 정비 작업)
짬을 배정받은 조는 채취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가을철(10~11월)에 짬의 표면을 정비한다. 이 작업을 짬매기 또는 개닦이라고 부르며, 바위에 붙어 있던 이끼나 해초, 불필요한 생물들을 긁어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다음 해 미역 포자가 건강하게 바위에 붙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데, 지역에 따라 '섭씨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짬매기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다음 해 생장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채취와 운반의 협업 체계
미역을 자른 후에는 해녀들이 망태기에 담아 수면으로 올라오고, 떼배를 운행하는 작업자가 그것을 받아 배 위에 정리한다. 때로는 해녀가 바위 위에서 작업하고, 떼배 위 사람은 이를 받아 한쪽으로 싣는다. 양쪽이 동시에 작업하며 효율을 높이며, 때에 따라서는 관리선을 이용해 미역을 크레인으로 인양하기도 한다. 짬에서 포구까지 이동하는 이 전체 과정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으며, 누구 하나의 몫이 아닌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진다.

이처럼 울진의 미역 채취 기술은 오랜 경험과 집단 지혜, 그리고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유지되어온 전통 지식 체계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기술은 단순히 미역을 수확하는 기술을 넘어, 생태를 배려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물속 깊이 숨은 돌미역을 알아보는 눈, 바람과 해를 기억하는 감각,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협업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